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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마고

여왕 마고는 이자벨 아자니를 주연으로 삼총사, 철가면의 작가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을 영화화 하여 유명해진 것이다.

그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프랑스를 그리고 있다.

프랑스는 프랑크 왕국 이후 카페 왕조가 들어서면서 프랑스라는 정체성을 가지는데 근대 대혁명시기까지 프랑스의 왕은 모두 위그 카페의 후손이며 지금도 유럽 일부국가-스페인과 룩셈부르크-는 위그 카페의 후손이 국왕으로 재위하고 있다.

여왕 마고는 카페왕조 직계가 끊기고 방계인 발루아 왕조의 또 방계가 되는 앙굴렘가의 후손이며 외가는 피렌체 공화국의 메디치가 이다.

카페 왕조는 필리프 4세와 그 아들들에게 왕위가 이어지다 직계가 끊어지게 된다. 이후 프랑스의 왕위는 살리카법에 따라 여성의 상속권을 제외하고 필리프 3세의 막내 아들인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인 필리프 6세가 잇게 된다.

이에 잉글랜드 국왕인 에드워드 3세가 이의를 제기하며 백년전쟁이 발발한다.

잉글랜드 국왕은 계보를 따져보면 원래는 노르만 해적이던 롤로에게 서프랑크 왕이던 샤를 3세가 공작위를 주면서 생긴 작위 이므로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었다. 하지만 여러해가 지나면서 잉글랜드왕의 세력이 커지고 잉글랜드국왕의 봉토가 프랑스 국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발루아가는 본가가 끊기면서 오를레앙가-루이 12세-헨리 8세의 매부-에 잠깐 넘어갔다가 후손이 없어 앙굴렘가로 넘어가게 된다.

앙굴렘가의 국왕은 프랑수아 1세, 그 아들 앙리 2세가 이었고, 앙리 2세는 원래 차남이라 왕위를 이을 확률이 낮았기에 프랑스나 신성로마제국에서 상급귀족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메디치가의 상속녀와 혼인할 수 있었다. 혼인은 물론 그녀에게 남겨진 엄청난 재산 때문이었다. 이는 희빈 장씨와 유사하게 볼 수 있다.

앙리 2세는 까뜨린느 드 메디치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10명이나 낳았으나 프랑스 국왕에 오른 아들들이 요절하여 왕위는 루이 9세의 아들인 로베르의 후손 부르봉가의 앙리에게 넘어간다.

까뜨린느 드 메디치는 모계로라도 발루아 가의 혈통을 남겨보려 딸인 마르그리트와 나바르의 앙리와의 혼인을 주선하였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나바르의 개신교도들과의 화해의 제스쳐를 내비침으로 프랑스의 경제를 받치고 있는 개신교도들을 위로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앙리와 마르그리트의 혼인날 구교도가 신교도들을 학살하면서 신교도들은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와 손을잡고 프랑스에 등을 돌리게 된다. 바로 성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

이후 앙리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낭트 칙령을 발표하고 위그노 전쟁을 끝내고 프랑스의 통합을 원하였으나 실패하여 약 백 년 후 루이 14세 때 절대왕정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낭트칙령을 폐지하게 된다.

앙리 4세의 엄청난 정치력으로 이후 프랑스는 유럽세계에서 다른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최강의 국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고, 루이 14세 때 짐이 곧 국가라는 엄청난 왕권강화를 이루게 된다.